수림지 0호

항구의 전깃줄 - 최우수작, 글그림

4장 쓸쓸한 믿음

가을이 깊어지자 항구는 눈에 띄게 싸늘해졌다. 여름 내내 이어지던 뜨거운 끈적임은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어느새 찬 기운이 항구 전체를 감쌌다. 아침저녁마다 불어오는 바람은 스산한 소리를 남겼고, 두 사람의 잠 못 드는 밤을 더욱 길게 만들었다. 세영은 정리하던 폐지 더미 틈에서 물고기 비늘을 주웠다. 자신의 삶과 겹쳐 보이는 비늘은 한때 햇살 아래 반짝였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퇴색된 채, 그저 차갑고 뻣뻣한 조각이 되어 있었다. 점점 쇠약해져 가는 그녀의 몸처럼, 삶의 빛깔 또한 서서히 퇴색되고 있음을 느꼈다. 도윤은 얼음 포대를 옮기는 한편, 낡은 컨테이너 문을 열 때마다 어느새 짙어진 자기 그림자와 마주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림자는 점점 더 깊어져 손이 잠기는 듯했고, 마치 자기 안의 또 다른 자신을 마주하는 기분이 들었다. 과거의 빛나던 자신과 현재의 부서진 자신, 그리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미래가 뒤섞여 그림자 속을 유령처럼 떠다녔다. 일이 끝나면 그는 컨테이너 앞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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