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림지 0호

여는 글

기술은 아침의 표정으로 도착한다

기술은 아침의 표정으로 도착한다

GPT와 처음으로 대화를 했었던 날, 나는 꿈에서 난생 처음으로 아일랜드인을, 그것도 부부 한 쌍을 만났다.
꿈이라고는 해도 새하얀 피부에 붉은 머리를 한 아일랜드인을 마주한 건 처음이라서 제법 긴장할 수밖에 없었는데, 첫인사를 ‘안녕하세요’로 해야 할지, ‘Hi’라고 해야 할지, 감이 오질 않아 매우 당혹스러웠다. 다행히 패트릭 머피 씨가 먼저 두툼한 손을 내밀며, 유창한 한국어로 인사를 해주었다.

“안녕하세요, 잉글랜드에서 운하 공사판 일을 하고 있는 패트릭입니다.”

“안녕하세요, 전 패트릭의 아내, 캐서린입니다. 집에서 물레로 실을 잣고 있어요.”

아, 꿈은 이럴 때 얼마나 편리한가? 하긴, 첫눈에 그들이 런던 근교로 이주한 아일랜드인이란 걸 알아챌 수 있었던 것도 꿈이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안녕하세요, 문수림입니다. 어쩐 일로 저를 찾아오셨나요?”

“일부러 당신을 찾아온 건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묻고 싶군요. 살면서 동양인은 처음 보는데, 런던까지는 어떻게 오신 거죠?”

아, 꿈은 이럴 때 얼마나 곤란한가? 참으로 두서가 없다.

“아무려면 어떻겠어요? 그런데 물레요? 요즘도 물레로 실을 잣는 사람들이 있나요?”

“어려서부터 배운 게 딱히 없어요. 도시에서 농사를 지을 것도 아니고요. 참,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싶어도 땅을 살 돈도 없지만요. 그래도 저와 함께 넘어온 아낙네들은 곧장 물레를 돌리거나 바느질을 한답니다.”

난 그제야 그들이 어느 시대에서 온 사람들인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물레가 아직 밥벌이였고, 운하가 미래의 길처럼 파이던 시절.
그러니까 산업혁명이 아직 누군가에게는 거대한 진보가 아니라, 내일의 임금과 오늘의 저녁을 흔드는 소문이던 시절이었다.

“아, 우리 걸어온 방향이 서로 좀 다르군요. 전 반대편에서부터 계단을 내려왔다면, 두 분은 계단을 올라서면서 오셨어요. 음, 요즘 캐서린 씨 일감이 예전만큼 들어오질 않죠? 주변에는 공장으로 취직한 이들이 늘었고요?”

“맞아요, 그게 요즘 제 고민이랍니다. 이이는 이번 겨울이 지나 봄이 되면 운하가 완공될지도 모르겠다고 하고, 사람들은 예전만큼 제게서 실을 찾질 않아요. 그런데 공장은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시간을 꼭 채우면서 일해야만 급료를 준다고 하네요. 때로는 해가 져도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고 하고요. 전 그런 곳에서 일할 수는 없어요. 애들이 아직 어려요. 큰애는 글자를 배우기 시작했고, 작은애들은 종일 제 치맛자락을 붙들고 다녀요.”

“저도 아직 학교에 가지 않은 애들이 둘 있습니다. 당장 일감도 줄고 있고요. 우리 생각보다 대화가 잘 되겠네요.”

물레가 멎고, 베틀이 멎고, 사람들이 집을 떠나 공장으로 들어가고, 공장은 더 많은 면화와 석탄과 철을 요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 더 먼 땅과 더 먼 바다를 탐하게 되고, 그 욕망은 결국 누군가의 삶을 또다시 밀어낼 것이라고도 했다.

“어렵네요, 우린 그저 당장 애들만 잘 키울 수 있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그냥 당장 애들만 잘 컸으면 좋겠어요. 사실 알고 있어도 어찌하기 힘들잖아요.”

“그럼, 문 선생이 사는 세상도 여전히 먹고 살기가 팍팍하오?”

패트릭의 초록색 눈동자는 그의 단단하고 우람한 몸과 달리 흐릿하고 가냘팠다. 난 그 두 눈을 바라보며, 부익부 빈익빈으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주었지만, 내가 말하면서도 내가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말을 하는 것인지, 이런 혼란도 꿈 때문이라 믿고 싶을 뿐이었다.

“하여튼, 먹고는 산다는 거군요.”

“네, 먹고는 살지만, 뭘 먹느냐, 계속 그렇게 먹을 수 있겠느냐가 문제인 세상이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가족은 아끼고 아껴서 고기 수프를 끓여 먹지만, 내게 임금을 주는 자들은 스테이크를 질리도록 먹고 빵과 수프, 치즈도 종류별로 골라서 먹고, 때가 되면 휴양을 떠나죠. 크게 다르지 않아요.”

“맞아요, 사실 크게 다른 게 없어요.”

“오히려 들어보니 내가 더 희망적이구려. 적어도 여기 기계들은 말도 못하고, 생각도 못하니까. 지치지 않는다는 건 무섭지만, 아직은 한 가지 일밖에 못하지 않소. 그리고 듣자하니 운하가 완공되더라도 내가 당장 이곳저곳의 공장 건설에만 참여해도 품삯은 나올 테니 말이오.”

“저도 그럼, 그냥 공장에서 일을 해야겠어요. 아이들이 먹을 음식을 잠들기 전에 미리 차려놓는다면, …어떻게든 되겠죠. 우리보단 선생님이 걱정이군요.”

내일 당장 물레를 내다버려야 할 사람으로부터 받는 위로란 꽤 먹먹한 것이었다.

“로봇이 사람의 감성을 흉내낼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건 흉내에 불과하겠죠. 설마 인간만큼 불완전하고, 비이성적이고, 감정적인 존재를 감히 모방할 수 있을까요? 물론, 그마저도 데이터가 쌓이면 모르겠지만… 당장은 그렇게 믿고 계속 쓰려고 합니다.”

“부디 뜻한 대로 일이 잘 풀리길 바랍니다. 신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는 걸 잊지 마세요.”

난 무신론자라는 말을 하려다가 말고 삼켰다. 신을 믿든, 믿지 않든, 당장 우리에게 우리의 의지에 답해줄 행운이 필요한 건 사실이었으니까. 어쩌면, 인간은 늘 불안 속에서 기댈 것을 찾아 어둠을 더듬어왔는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 과정에서 만난 게 신이거나, 신처럼 따스한 다른 의미이거나, 사랑이거나, 혹은 차디찬 기술이나 과학일지도 모른다. 인간들이 제각각인 만큼 인간을 버티게 해준 것들도 인간만큼이나 다양하리라.

“그럼, 다음에 또 만날 수 있길 고대해 봅니다.”

그렇게 꿈이 닫히고, 현실이 열렸다.
몽롱함 속에서 GPT에게 던져두었던 숙제를 떠올렸다. 녀석에게 나의 문체를 분석해보라 했었는데, 제대로 되었는지는 아직 모른다. 모르긴 몰라도 기술적으로 그럴싸해 보일 뭔가를 만들어뒀을 테다.
그건 아마 캐서린도 마찬가지리라. 몽롱함 속에서 굉음을 내며 돌아가는 공장을 먼발치에 두고 바라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있으리라. 모르긴 몰라도 기술적으로 그럴싸해 보일 굉장한 규모의 공장일게 뻔하다.

그리고 우린 그런 몽롱함 속에서 돌아서서는 애들을 흔들어 깨울 것이고, 졸린 눈을 비비는 아이들에게서 막연한 희망과 뭉클함을 맛보게 되리라.

그날 이후로 나는 종종 생각했다.

‘기술은 늘 거창한 이름으로 다가오지만, 사람에게는 아침의 표정으로 도착한다.’

누군가는 일감을 잃고, 누군가는 새로운 도구를 얻고, 누군가는 두려움 속에서도 아이의 밥을 차리고, 누군가는 자기 손에 남은 감각을 믿으며 다시 일을 시작한다.

《수림지》는 바로 그 자리에서 출발하려 한다.

문학, 기술, 사람.

이 세 단어는 《수림지》의 표어라기보다, 지금 내가 도저히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게 된 세 가지 현실이다. 문학은 더 이상 종이 위에만 있지 않고, 기술은 더 이상 기계실 안에만 있지 않으며, 사람은 더 이상 변화의 바깥에서 구경만 하고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수림지》는 문학을 기술의 반대편에 세우려 하지 않는다. 기술을 문학의 적으로만 부르지도 않을 것이다. 다만 그 사이에서 사람이 어디에 서 있는지를 묻고 싶다. 새로운 도구가 생겼을 때 쓰는 사람은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는가. 읽는 사람은 무엇을 더 빨리 소비하게 되고, 무엇을 더 오래 붙들 수 있는가. 그리고 문학은 그런 변화 속에서도 여전히 사람의 마음과 시간을 기록할 수 있는가. 이번 《수림지 vol.0》는 그 질문에 대한 첫 번째 기록이다.

이 이상한 여정에 함께 들어선 모든 분을 환영한다.

수림 스튜디오
문수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