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기적을 부른다. 먼곳에서 씨앗을 가져와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고, 잎을 벌리고, 결실을 부른다. 생을 어루만지는 바람. 그런 바람이 갈라버리는 생은 순간의 소리 하나조차 담아내기 버겁다.
흙과 돌이 드러난 민둥산의 뺨을 타고 매서운 바람이 흐른다. 그나마 살아남았던 침엽수들마저 병충해 앞에서 백발을 드러내며 으스러지고 있다.
짐승들도 떠난 자리에 남은 건 바람이 내는 파열음 뿐. 흔들리는 모래와 돌맹이가 내는 소리는 모두 묻히고 만다. 터널이 뚫려 허리가 관통당해도 자리를 지키던 산. 이제는 맨살 위로 채찍처럼 쏟아지는 바람의 광기를 견디는 중이다.
앞으로 산이 쌓아올릴 시간에 대해서는 감히 단언할 수가 없다. 문장은 결국 인간이 만드는 가장 허술한 모조품이니까.
멈추지 않고 오르내리는 바람의 질주.
얼어버린 세상에서 바람소리만 들리는,
겨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