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글이 써지지 않는 이유

당신이 글이 써지지 않는 이유

생각하고, 직시하자

2025. 12. 2.#글쓰기#아픔#우울#직시#행복#힐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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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쟁이는 많지만, 모두가 매일 쓰지는 못한다.

스레드도 그렇고, 브런치도 그렇고, 자주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본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들은 대부분 아마추어이며, 프로가 되길 희망하거나 ‘작가’라는 타이틀을 흠모하는 이들이다.

반드시 약속된 기한까지 원고를 넘겨 마감을 해야만 먹고사니즘이 해결되는 프로는 아니란 이야기다.

(물론, 프로들 중에도 잘 안써진다면서 같이 웃고 떠들며 노는 이들도 있지만, 그들은 그렇다고 마감을 어기지는 않는다. 정말 안써지더라도 어떻게든 짜내고 나서 돌아온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들은 글이 써지지 않는 걸까?

이유는 대단한 게 아니다. 대부분 단 두가지다. 이 두가지만 해결이 되어도 9할은 쓸 수 있게 된다.


시간의 부재는 곧 사고의 부재

  1. 쓸 말이 없다.

2천년대 초반, 블로그 대박신화와 함께 오늘날까지 이어진 SNS시대의 글쓰기는 최소 1일 1마감을 요구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경쟁에서 쉽게 뒤로 밀려 노출이 반강제적으로 제한되는 구조다. 사람들은 플랫폼이 요구하는 대로 그 강압을 못 견디고 매일같이 글을 press 한다. 문제는 그게 모두에게 다 괜찮은 방법일까?

현대인들은 바쁘다. 당장 하루에 기본적으로 처리해야할 업무 자체가 비대하다. 거기에 일상 유지를 위해서 개인의 환경도 가꿔야 하고, 미래 대비를 위해서도 자기계발의 시간이 있어야 한다. 그뿐인가? SNS도 노동이다. 타인에게 댓글도 달아주지 않고 자기 할말만 하는 이는 오래가지 못한다. 그렇게 꾸준히 댓글만 달아줘도 꼬박 하루가 그냥 흘러갈 정도다.

그런데 이런 세상에서 따로 짬을 내어 글을 쓴다고??

그건 정말 놀라운 업적이다. 그것도 매일같이 괜찮은 레벨의 글을 끊임없이 쓸 수 있다면 말이다.

헌데, 유감스럽게도 그렇게는 되지 않는다. 정작 글을 쓰기 위해서 중요한 ‘생각할 시간’이 부족해서다. 사고의 깊이가 떨어지니 문장은 금방 할랑해지고, 급기야 무미건조해진다.

문장만 그러면 다행인데, 열흘도 채 되지 않아서 쓸만한 내용이 없다. 이미 괜찮은 말을 주구장창 흘린 덕에 더는 자신을 꾸며줄 만한 좋은 글이 떠오르지 않는다.


거듭 말하지만 생각이 우선 중요하다.

그러니 자유롭게 쓰고 싶다면, 자유롭게 생각하고, 상상하고, 읽고, 봐야 한다.

그러기 전에는 글이 쉽게 터지지 않는다. 자판기처럼 누르는 대로 글을 뱉을 수 있을 정도의 사람이 되기 위해선 정도가 없다.

읽기만 해서도 안되고, 보기만 해서도 안된다.

소화하기 위해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상상해야 한다.

헌데, 현대인들은 보여주기 위한 인증을 위해서라도 읽기도 하고 보기도 하지만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자신의 그릇만큼만 하고 결코 넘어서려고는 하지 않는다. 역지사지가 생략된 채 이미 자신이 확고한 기준인 셈이다.

그러니 글이 나와도 편향적이라 허점이 많고, 매력이 없다.


아프지 않아도 글은 나오지 않는다.

  1. 아프지 않고 무난하고 행복한 일상이다.

이건 또 무슨 헛소리인가 싶겠지만, 실제로 글은 사람이 어두울 때 잘 써진다.

한때 우리나라를 휩쓴 키워드 중 하나가 ‘힐링’이다. 덕분에 글쓰기 수업도 ‘힐링 글쓰기’란 타이틀로 엄청나게 열렸고, 청강생들도 만족하는 이가 많았다.

왜? 치유해야할 내면의 상처를 가진 이들이 정말 많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글을 쓰는 동안 스스로 내면을 치료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실제로 글쓰기와 그림그리기는 심리치료의 수단으로도 쓰일 정도다.

그만큼 자신을 스스로 표현한다는 건 여러모로 자신의 정서를 위해 긍정적인 기능을 해주는 셈이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토해낼 걸 다 토해낸 이들은 어떨까?

이후로는 이전처럼 글이 쉽게 나오질 못한다. 더는 할말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무엇이 더 궁금하지도 않다. 스스로 만족하고, 등이 따신 상태에서는 남들처럼 더 밝은 곳에서, 더 즐거운 유희를 찾고 싶어하는 게 인간이다.

믿기지 않는다고?

대문호 헤밍웨이 형님도 “작가는 자신의 상처가 있는 곳까지 깊이 내려가서 써야 한다.”고 했었고, 글쓰기 작가 나탈리 골드버그는 저서의 제목부터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다.

삶의 결핍과 아픔, 우울이 글을 부른다. 그런데 단순하게 자극을 받고, 생각이 깊지 않은 상태에서는 기본적으로 아픔을 마주할 일이 없다.

아픔을 마주하는 행위는 정말 상처가 대단한 사람이라 심연을 들여가 봐야만 하는 이거나, 일부러 자신의 모든 기억과 생각의 기저를 애써 확인하는 사람 뿐이다.

쉽게 말해, 1일 1회로 일정 수준 이상의 글과 분량을 꾸준히 뽑아낼 수 있는 작가란 자신의 상처는 물론이고, 타인의 상처까지도 파고들어서 마주하는 이다.


인간은 모두가 결핍된 존재임을 잊지 말자

행복한 이들은 글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아니, 행복하지는 않더라도 일상이 무난하게 잘 흐르고 있던 이들은 글이 나오질 않는다.

그게 정상이다. 지극히 정상이고,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보통의 인간에게는 삶의 고비도 찾아오지만, 삶이 정서적으로 풍요로워지는 시기도 반드시 오기 마련이다.

그런 시간을 걷는 중에는 글이 쉽게 쓰여지지 않는 게 정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억지도 더 잘 쓰고 싶거나, 그러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을 멈추지 않고 있는 이들이라면,

아프지 않아도 아파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어느 한쪽이 결핍된 존재다. 완벽한 존재란 어디에도 없다. 세계 갑부라 하더라도 어딘가는 왜곡되었거나, 결함이 있을 수 있다.

다 멀쩡해 보이더라도 발가락이 고르지 않고 세 번째 발가락이 다른 발가락보다 길 수도 있고, 그로 인해 다른 이들보다 양말 교환 주기가 더 빠를지도 모른다.

갑부에게 그게 무슨 대단한 고민이 될 수 있냐고 할 수도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문제일 수도 있다. 왜냐면, 그런 존재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모든 걸 가져도 자신의 결핍 하나가 전체를 다 가릴 정도로 마음이 어두울 수 있는 존재가 인간이란 말이다.

직시

그러니 스스로 직시해보자.

아마 지금은 괜찮더라도 과거에 나빴던 기억이 있을 수 있고, 사사로운 것이더라도 요즘 약간 번거로워진 게 있을 수 있다.

그런 것들에 대해 집요하게 생각해보자.

논문을 쓸 수 있을 정도로 집요하게 몰아세우고 상상해보자.

그럼, 결코 쓸게 없다라는 말은 쉽게 나오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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