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과 AI의 관계
현실에 실존하는 마법몽둥이, AI
그들의 관계
악어와 악어새, 개미와 진딧물. 듣기만 해도 편한 관계다. 서로서로 필요한 걸 나누니 말이다.
사마귀와 연가시, 뻐꾸기와 붉은머리오목눈이. 듣기만 해도 인상이 찌푸려지는 관계다. 노력 없이 기생하여 기만으로 이어지는 관계니 말이다.
그럼, 인간과 AI는?
요즘 부쩍 AI와 관련된 뉴스가 많다. 주식에서도 관련주는 연일 상승하고 있고, 뉴스도 AI 관련 뉴스에 조회수가 많고, 커뮤니티에서도 AI 최신 정보는 늘 상위에 랭크된다.
그렇다, AI는 이제 우리 일상에 뿌리를 내렸다. 당장 나부터 그렇고, 여기저기서 AI 없이는 이제 일도 되지 않는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뭐, 어느 조직에서는 시니어 개발자가 직접 코딩을 한 줄도 적지 않았다니 점점 비대해지는 AI의 능력은 이제 정말 인간의 상상력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그래서 그런지 역으로 인간은 상상력을 점점 잃어가는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 아니, 그런 경우가 적지 않다.
뭐든 일단 ‘최고’가 좋으니까
SNS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글 중 하나가 ‘내 제미나이는’, ‘내 GPT는’, ‘클로드는 정말’로 시작하는 개인들의 AI 사용 후기, 아니, 감상 총평이다. AI를 실제 사무나 업무용 외에도 개인 비서나 상담사로 삼는 이들이 많다 보니 AI와 내밀한 시간을 보낸 후, 감상을 적는 이들도 적지 않다는 소리다.
흥미로운 건 저마다 제각각의 이유로 쓰고 있으면서 평을 내린다는 것이고, 그러면서도 여러 사용자가 ‘최고’라고 말하는 모델로 빠르게 갈아타고 있다는 거다.
매우 재미있는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저마다 생각과 사용 목적은 다르면서 대체 왜 가장 좋다는 평에 곧장 빠르게 모델을 갈아타는 걸까? 아니, 갈아타지는 않더라도 굳이 2개 이상의 모델을 곁에 두고 답변을 비교하는 걸까?
어쨌든, 뭐든, ‘최고’는 최고라서 좋은 걸까?
내 GPT와 님 GPT는 다릅니다만
AI는 도구다. 정확히 말하면, 지금까지 인류가 목격한 적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도구다. 그것도 무지하게 범용성이 뛰어나 만능열쇠처럼 오해할 정도로 대단한 도구.
문제는 도구 자체의 역량이 너무 뛰어나다보니 많은 사용자가 도구의 기본적인 성능만을 무한히 신뢰하여, 무턱대고 의존하려는 경향이 크다는 점이다.
그런데 그럴 법도 하다. 이 대단한 도구에 대한 사용법을 구체적으로 알고 있는 이들은 극소수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부 작동 원리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개발자들조차 말이다. 이건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이다. 개발자라고 해서 모든 출력 경로를 예측할 수는 없다. 따라서 사용자는 결과를 신뢰할 뿐 구조를 통제하지 못한다.
이건 인간이 인간의 뇌에 대해서 여전히 잘 모르는 것과 비슷하다. 기본적으로 굴러가는 운영 원리를 아는 것과 그 역량의 한계선을 명확히 아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라는 소리다.
그런 이유로, 같은 버전의 같은 도구를 써도 결과물은 천차만별이다.
이쯤에서 이제는 여기저기서 들어봤을 이야기를 나도 해보겠다.
“그려줘”, “만들어줘”, “생성해줘”, 처럼 그냥 ‘해줘’로만 나오는 결과물은 전문가(?)가 앵커를 파악하여 잘 다듬은 프롬프트로 생성한 결과물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고.
물론, 이 정도는 지겹게 들었을 내용이니 여기서 조금만 더 전진해 보자.
여기에서 프로젝트를 직접 어느 단계까지 진행해 보았느냐로 바꿔서 물어보면 이야기가 크게 달라진다.
쉽게 말해, 수리미는 GPT Plus로 수림 스튜디오를 굴리고 있다. 이미지 생성이나 디자인UX가 조악하든 어쨌든 인내와 끈기로 대화 섹션을 미친 듯이 늘려가며 만든 수리미의 수림 스튜디오는 일단 오늘도 돌아간다.
반면, 어떤 이는 훨씬 더 비싼 요금 플랜으로 클로드를 쓴다. 그래서 미려한 미감을 살려가며 초반에 신이 나서 만들기 시작했다가 어째서 코드가 생성되고 리팩토링이 되는 건지 이해도 못한 채 토큰이 먼저 동이나 버려서 멈춘 사람도 있고, 실제 자신의 사무공정만을 단순화 한 사람도 있다.
게다가 또 어떤 이는 누군가 토큰을 녹여서 코드를 짰을 때, 구글의 OPAL을 써서 노코드로 단순한 앱을 만들어 일을 줄여버리기도 했다.
어째서 이런 차이가 벌어진 걸까?
모두다 한끗 차이라 본다.
AI라는 개쩌는 도구를 왜 활용하려고 하는가? 대체 AI로 무엇을, 왜, 만들려고 하는가? 그걸 얼마나 바라고 있는가?
위 질문에 얼마나 충실한 태도로 임했는가가 전부라는 거다.
고수는 장비를 탓하지 않는다
결국 집요함이 상상력을 부른다.
단순히 ‘해줘’를 썼다는 건 굳이 애써서 에너지를 쓰기 싫었다는 말이 된다. 무언가를 더 정확히, 디테일하게, 컨트롤할 의지가 빈약했다는 것.
그렇다는 건 업무 단위에서 썼다고 보긴 어렵다. 일상에서 사소한 이유로 찾지 않았을까?
허나, 하나의 완결된 프로젝트나 상업적 결과를 위한 완성품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럴 땐 아무리 비싸더라도 토큰을 녹여가며 결과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우린 기본적인 신속함과 정밀함을 담보하기 위해 더, 더, 더, 비싼 모델, 유료 플랜을 찾게 된다.
재미있는 건 그렇게까지 써본 적 없이 무료 맛보기만 써보고도 사람들은 평을 남긴다는 거다.
그래서 AI에 대한 평은 제각각이고, 자신의 사용 경험만이 전부고, 때문에 역설적으로 최신 모델, 최고 모델에 대한 환상은 더욱 커지게 되어 너도 나도 최신 모델 맛보기는 필수 코스가 된다.
그렇지만 이런 사용은 도구에 대한 의존성만 키울 뿐이다.
예로부터 고수는 장비를 탓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난 그걸 당구장에서 비싼 당구비를 치러가며 배운 적이 있다.
300이상의 실력이었던 선배는 휘어진 큐대로 손쉽게 승리를 취했고 고작 120이었던 나는 정자세로 반듯한 장비를 썼음에도 패하고 말았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상상력이 빈약하여 나는 도전적으로 공일 칠 수 없었던 반면, 나의 선배는 없는 길도 만들어서 치는 사람이었기에 장비가 허술한 것 정도는 문제가 아니었던 거다.
꼴랑 동그란 공 4개, 스틱 하나로 운영하는 여가 스포츠게임도 이럴 진데, 최첨단의 도구는 어떻겠는가?
반드시 도전하여 이걸 제대로 만들어보겠다는 의지가 깔리지 않는다면, 상상력은 발휘될 수 없다. 좌충우돌의 경험치가 쌓여야 더 넓은 시야로 문제를 인식하고 개선할 수 있는 법이다.
그래서 인간과 AI의 관계는
이제 글을 닫기 위해 최초에 던졌던 의문으로 돌아가 보자.
그래서 인간과 AI의 관계는 어떤 관계란 말인가?
그건 매우 단순하다. 공생관계 기생, 착취관계 만큼 단순명료하다.
AI는 인간의 도구다. 다만, 인간의 의지에 따라 그 힘이 기하급수적으로 달라지는 전례 없는 도구일 뿐이다.
인간의 의지를 증폭시키는 비대칭적 도구, AI. 이것은 이제 실존하는 현실의 마법몽둥이다.
그러니 더욱 중요해진 것이다. 내가 AI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게 궁극적으로 무엇인가? 이 물음에 대해 제대로 답할 수 있어야만 한다. 스스로 욕구를 모른 채 시작해서는 답이 나올 수 없다.
대충 AI로 개쩌는 사람이 되고 싶다거나 인기인이 되고 싶다거나 한다면, 평생 타인의 결과물만 커닝하다가 끝날 게 뻔하다.
그것보단 명확하게 무엇을 만들 것인가, 무엇을 설계하여 구현할 것인가를 이해해야 한다.
그런 다음 그 목적에 어울리는 AI 모델을 찾고 우선은 가장 저렴한 플랜부터 써서 부딪혀 보는 거다.
이 과정에서 여러 경쟁업체의 제품에 눈을 돌릴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만큼 기술 발전의 속도가 빠르니까.
내가 성장하는 속도보다 기술 발전의 속도가 더 빠른 요즘이다. 내가 갑갑증을 느낄 때쯤, 그 업체에서도 다음 모델이 나오는 수준이니 하고자 하는 일을 제대로 이해하고, 활용법 자체에 익숙해지는 게 먼저다.
결국 집요함이 상상력을 부른다. 그리고 AI는 그 상상력의 현실 구현을 돕는다.
여러분의 상상력이 비대한 만큼 AI라는 마법몽둥이도 함께 커진다는 걸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