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행본이 아닌 출판의 미래를 봐야할 때
작가 생존 전략
여전히 작가를 희망하는 이들이 많고, 그들이 끊임없이 ‘쓰는’ 작업에 몰입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시작에 앞서 난 그들의 노력을 비웃고자 글을 쓰는 게 아니다. 오히려 예나 지금이나, 작가가 되기 위해 ‘쓰는 것’ 자체는 여전히 유효한 방법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모두가 바늘구멍을 통과할 수는 없고, 그 구멍이 하루가 다르게 작아지고 있음에도 여전히 단 하나의 경로만을 전제로 전략을 세우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 선택인지에 대해서는 한 번쯤 점검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는 창작의 가치가 아니라, 기회비용과 확률, 그리고 지속 가능성의 문제다.
종이책 단행본 시장의 위기
출판업이 위기라는 말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작가지망생이라 부르는 이들 중 상당수는 이 구조적 변화를 전제조건으로 받아들이지 않은 채 출발하고 있다.
현재 단행본 출판시장의 전체 매출액을 다 합산하더라도 국내에서 집계되는 OTT플랫폼 업체 한 곳의 매출과 비교될 수준에 불과하다.
(24년 기준, 주요 단행본 출판사 22곳의 매출 합계가 약 4650억. 전체 시장은 약 1조 6천억~2조원 이내로 추정. 국내 매출 1위 OTT업체는 넷플릭스로 약 9000천억원.)
단순히 산업 비교를 하자는 게 아니다. 진짜 문제는 이처럼 제한된 시장 규모 안에서는 개별 창작자가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할 수 있는 확률 역시 구조적으로 낮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한강 작가처럼 특별한 경우라 하더라도 작가 개인이 한해 지급받는 인세가 과연 지급의 주체인 출판사의 한해 매출을 넘어설 수 있을까?
너무 비관적으로 들린다면, 요즘 많은 이들이 주목하고 있는 IP사업, 즉 2차 저작권을 두드려보자. 쉽게 말해, 넷플릭스 등을 통해 영상화로 확장될 경우는 어떨까.
여기에 대한 환상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미 J. K. 롤링과 성공 사례를 봤으니까. 그러나 그때와 같은 IP 수익 구조를 기대하는 것은 국내 출판·영상 산업의 계약 관행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최근 넷플릭스로 드라마 반영이 되어 큰 이슈가 되었던 『중증외상센터』 같은 경우에는 계약금이 1억에도 미치지 못했었다. 이는 개별 작품의 가치가 낮아서라기보다는, 영상 플랫폼 중심의 제작 구조 속에서 원작 IP가 차지하는 협상력이 제한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에 가깝다. 즉, 2차 저작권 시장 역시 창작자에게 무조건적인 보상 확장을 약속하는 공간은 아니라는 뜻이다.
저자들의 약진과 한계
이런 흐름과 별개로 최근까지 자기계발서 시장이 꾸준히 커져왔던 것은 눈여겨볼 만하다.
2000년대부터 이후로 25년 이전까지 꾸준히 우상향을 해왔고 분야와 상관없이 전체 종합 베스트셀러에서도 5위권 이내에 자기계발서 서적들이 절반을 차지하는 일도 생겼으니 말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다수의 출판사들이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검증된 자기계발서 제작에 집중해 온 것도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 결과, 수많은 저자들이 시장에 등장했고 그들 대부분은 베스트셀러를 목표로 세상에 나왔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이후다. 대다수의 책들은 길어야 몇 주 정도 순위권에 머문 뒤 조용히 사라지는 경로를 반복해 왔다.
‘좋은 책은 결국 독자에게 전달되리라’는 저자들의 확고한 믿음과는 달리 많은 책들이 충분한 독자층을 확보하지 못한 채 소멸된 이유는 콘텐츠의 질 이전에 정보 환경의 변화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이미 상당 부분 정리된 정보와 개념들이 웹(web)을 통해 무료이거나 더 빠른 형태로 유통되는 상황에서 종이책이 제공하는 정보 자체의 희소성은 과거에 비해 크게 낮아진 상태다. 이 점을 가볍게 여긴 채 책을 기획하고 출간한 경우, 독자에게 선택받기 어려운 것은 어찌 보면 필연에 가깝다.
실제로 많은 저자들이 반복적으로 인용해 온 ‘공자 왈, 맹자 왈’식의 고전 인용이나 자본주의 신화·영업론과 같은 주제들 역시 이미 수차례 재가공되고 재인용되어 온 담론들이다.
그 결과, 시장에는 유사한 메시지와 구조를 지닌 책들이 서로를 복제하듯 쌓여갔다. 외형상 시장의 덩치는 다소 확장된 것처럼 보였을지라도 독자에게 명확한 인상을 남긴 스타 저자는 극히 소수에 그치는 구조가 굳어지게 되었다.
스타 저자들의 IP확산과 작가라는 명함
영리한 스타 저자들은 처음부터 도서 출간 자체를 최종 목표로 삼지 않았다. 우선은 자신의 사업이나 브랜드를 중심에 두고 활동했고, 그 과정에서 팬덤을 형성한 뒤 이미 형성된 수요를 바탕으로 출간을 선택했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자신을 저자가 아닌 ‘작가’로 포장했다. 인세를 지급받고, 꾸준히 뭔가를 쓴다는 점에서 3자가 보기에는 ‘작가’로 보일 법도 하다.
그러나 이들을 전통적인 의미의 순수 창작 작가로 분류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 이들의 핵심 역량은 새로운 세계관이나 서사를 창조하는 데 있다기보다, 이미 존재하는 개념과 담론을 당대의 흐름에 맞게 선별하고 재배치하는 편집 능력에 있다.
이는 가치 판단의 문제가 아니다. 작업 방식과 결과물이 다르다는 사실을 구분해서 보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이들은 순수창작자들처럼 넷플릭스 같은 플랫폼에 오리지널 콘텐츠로 진입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렇지만, 이들은 사업적으로 매우 능숙한 이들이라서 별개의 시장을 개척하는데 성공했다.
바로 강연이다.
형태와 방식은 저마다 다르지만, 이들은 자신의 책을 콘텐츠 원형으로 삼아 강연을 기획하고, 청취자에게 직접 가격을 책정해 대가를 받는 구조를 만들어냈다.
위기의 종이책 단행본 시장의 매출을 그래도 멱살 잡으며 하드 캐리할 수 있었던 배경이 여기에 있다. 강연하는 저자들이 브랜딩을 위해 물성이 있는 종이책을 선호한 결과였다.
또 다른 시대 변화, AI의 등장.
그렇지만, 이런 흐름도 이제는 유효하지 않으리라.
이미 상당수의 독자들은 종이책, 특히 정보 전달을 목적으로 한 책에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 성공한 부자들은 모두 책을 읽었다.
- 재테크를 위해 독서만큼 좋은 습관은 없다.
한 동안은 이런 말들이 매우 그럴싸하게 들렸지만, 이제는 예전 같지가 않다.
정보의 접근성과 처리 방식이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미 방대한 정보가 웹에 공개되어 있고, 이제는 그 정보조차 AI가 요약·정리·재구성해 제공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구글의 노트북LM의 경우에는 논문 한편을 통째로 밀어 넣어도 단 몇 분 안에 거뜬히 요약을 한다. 심지어 대화형 오디오 콘텐츠처럼 편집된 형태로 전달하기까지 한다. 읽을 필요도 없이, 듣기만 해도 되는 셈이다.
이런 환경에서 단순 정보 전달을 주된 기능으로 삼는 매체로서 종이책이 얼마나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지는 냉정하게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물론, 여전히 독서 옹호론자들은 맥락적 이해, 서사적 깊이, 사고의 축적 등을 근거로 종이책 독서의 가치를 강조하고 있다. 그 주장 자체가 틀렸다고 말할 생각은 없다.
다만, 현실 지표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
대한민국 성인 독서율은 43%로 성인 10명 중 6명은 1년에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는다. 이는 OECD국가들 중 약 15위로 하위권에 속한다.
그런데 우리의 경제성장지표는 어떤가? 현재는 전체 200여개 국가 중 14위이며, 전후 지금까지 우린 꾸준히 우상향을 해왔다.
이게 과연 독서 덕분일까?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필요한 정보를 목적에 맞게 선별하고 빠르게 습득·숙달하는 학습과 단행본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는 독서 행위는 본질적으로 다른 활동이다.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정보를 효율적으로 전달받고 활용하는 능력만큼은 다양한 방식으로 축적해 왔고, 그 결과가 지금의 경제 지표로 나타난 것에 가깝다.
그리고 나의 주장이 결코 비약이 아니라는 걸 말하기 위해 실제로 25년부터 정보 전달을 목적으로 하던 책들은 전체적으로 매출이 급감하기 시작했다는 것도 남겨둔다.
단행본이 아닌 출판의 미래를 봐야할 때
이야기가 길게 돌아왔다.
이쯤에서 결론을 정리해 보자면, 정말로 작가를 꿈꾼다면 과거의 방식만을 반복하기보다 출판이라는 산업 자체가 어디로 이동하고 있는지를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결국 작가란,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이 쓴 글이 경제적 가치로 환원되어야만 지속할 수 있는 직업이다.
그렇다면 질문은 명확해진다. 그 가치는 그동안 어디에서, 어떤 구조를 통해 만들어져 왔는가. 과거에는 출판사가 그 역할을 대행했고, 최근에는 각종 플랫폼이 이를 대신해 왔다.
그리고 앞으로는 작가와 독자가 직접 연결되는 1:1 거래 구조가 더욱 복잡하고 다양한 형태로 확장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나만의 이상론이 아니라, 이미 여러 영역에서 관측되고 있는 변화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구조 전환이 종이책 중심의 유통 환경이 아니라 웹 기반의 기술과 시스템 위에서 가장 빠르게 구현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출판을 논할 때, 단행본의 존속 여부만을 묻는 것은 핵심을 비켜간 질문일 수 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작가의 글이 어떤 경로를 통해 독자에게 도달하고, 어떤 방식으로 가치가 환원될 것인가다.
이제는 ‘단행본을 낼 수 있는가’보다 ‘출판의 미래 안에서 자신의 글이 어떤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가’를 먼저 고민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