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츄럴 본 문과생이 바이브코더가 되는 방법 1

내츄럴 본 문과생이 바이브코더가 되는 방법 1

한쪽으로 크게 치우친 편향된 문과인의 삶

2026. 1. 13.#문과생#지잡대#문학#문예창작학과#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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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썰을 풀기 전에 첫 시간은 내 과거 이야기를 좀 풀까 한다.

뒤에 이어질 내용들과 갭이 엄청나게 크다지만, 내가 얼마나 편향적인 문과생의 삶을 살았는지는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 같아서다.


지잡대 출신

난 문과생이다. 그것도 흔히 말하는 지잡대 출신이다. 그래, 처음부터 비전은 없었다. 그리고 그게 결과적으로 내 무기가 되었다.

살면서 알게 된 진실이 하나 있다면,

돈은 아예 없거나, 완전 많으면 문제가 없다는 거다. 어떻게 아예 없는 게 문제가 안될 수 있냐고 따질 사람들 많겠지만, 아예 없어본 적이 있는 내가 확신한다.

돈이란 건 아예 없으면, 어줍지 않은 희망이나 타인과의 비교를 애초에 꺼버리게 된다. 진짜 문제는 어정쩡하게 생겼을 때다. 그때부터 욕심이 화를 부른다.

그리고 이건 배움도 마찬가지더라.

어정쩡하게 배우고, 익히게 되면 그게 화가 된다. 난 지잡대 문과생. 처음부터 전공을 살린다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덕분에 난 무슨 일이든 해도 괜찮다. 먹고사니즘만 우선 해결 된다면, 언제든 내가 글을 쓰는 자리로 돌아올 수만 있다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내츄럴 본 문과생

지잡대 출신이라지만, 한 때는 나도 최대한 전공을 살리는 쪽으로 길을 꾸려나갈 생각을 했었다. 그만큼 난 우리말과 우리 문학을 사랑했다.

다만, 그게 중고등학교 때쯤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때 이미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좋은 걸 오래도록 누리기 위해서는 먼저 굳건해야 한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아버렸던 거다.

말이 나온 김에 공부 이야길 더 해보자. 난 남중, 남고, 지잡대를 나왔다.

수학능력 400점 만점 세대였고, 언어영역과 외국어영역은 당시 120점, 80점 만점에 모의고사에서 늘 100~110점, 70점대를 유지할 정도였지만, 80점 만점의 수학은 0~24점 정도였다. 그래서 난 지금도 산수와 수학을 혐오한다 ㅋㅋㅋㅋㅋ

게다가 결정적으로 난 열여섯 때 이미 소설가가 되고 싶다고 스스로 못을 박은 몸이었다. 그땐 문학이니, 뭐니, 이런 걸 전혀 몰랐다. 그냥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고,

그래서 몇 군데를 생각했던 게

명지대 문예창작학과와 계명대 문예창작학과 정도였다. 계명대는 집과 가까워서였고, 명지대는 집에서 멀어지고 싶어서였다.

국어국문학과

인생은 늘 반전을 준다.

모의고사 때보다 실전에서 점수가 잘 나오지 못한 건 점점 더 공부에 흥미를 잃은 탓도 컸지만, 당시 엄니 말을 듣지 않고 다니다가 감기에 걸린 게 결정적이었다.

1교시 듣기에서부터 풀리지 않으니 점수가 꼬라박을 수밖에. 마지막 외국어 영역 땐 계획에도 없던 재수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할 정도였다.

그래도 어려서 겁이 없었던 탓에 그냥 점수에 몸을 맞춰서 다니지 뭐. 라고 가볍게 생각을 했고,

둘러본 다음 캠퍼스가 가장 큰 학교로 택했다.

원하던 대학들의 문예창작학과는 이미 물 건너갔으니, 국어국문학과로 방향을 수정한 채로.

그렇게 입학한 대학에서 난 학과 수업이 아닌 동아리실에서 처음으로 문학을 만났었다.

중도포기

문학에 대한 열병은 전역 이후 더 깊어졌다. 문학상을 수상해야 한다는 목표가 나를 끌었다.

그렇지만, 2년 연속 전국대학단위 공모전에서 미끄러졌다. 최종 경쟁까지는 다서 작품 언급은 되었지만, 수상은 내 몫이 아니었다.

늘 교내 1등이었지만, 지잡대 교내 1등 정도로는 성에 차지 않을 정도로 난 오만했고, 경우 없었다.

그렇게 졸업반이 되고, 좁은 선택지 안에서 고민하다가 같은 대학 대학원에 진학했었다. 모두 다 지도교수님 덕분이다. 내 인생 최초의 스승님...

다만, 유지하기에는 집에 돈도 없었고, 무엇보다 박사 과정은 일단 서울대로 가야 쇼부가 나도 나겠단 현실이 나를 무척 불편하게 했다.

내가 서울에서 열린 학회에 참석하지 않았더라면 더 무모하게 버틸 수 있었을까?? 늘어선 서울대 출신들을 보고 있자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저렇게 많은 인물들이 전국 대학의 교수가 되겠다고 줄을 섰는데, 나 따위에게 시간강사 자리라도 오긴 할까???

그렇게 제대로 겁을 먹고 석사과정 중도포기를 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난 많은 돈을 필요로 하지 않았고, 존버할 정도만 된다면 꾸준히 글을 쓸 생각이었으니까.

하하, 그렇지만, 뭐, 인생은 늘 반전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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